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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임금도 막을 수 없다. 조선의 묘지소송

- 조선을 뒤흔든 묘지 소송, 산송(山訟)은 무엇인가?
산송은 조상의 묘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송을 말한다.
조선 시대 관아에 내던 청원서 중 70%가 묘지에 관련된 것이었다.
선산(先山) 영역을 지키려는 사대부 가문의 싸움이 주를 이뤘다.
산송을 겪지 않은 집안이 없을 정도였다. 유교이념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조상의 묘지 문제는 가문과 가문의 대립이었고 이는 곧 패싸움으로 번져 사망자가 속출하는 지경에 이른다.

- 열일곱 처녀 박효랑이 왕의 어가행렬을 가로막은 까닭은?
18세기 장안의 화제가 된 대표적인 산송 사건이 있다.
숙종38년(1712년), 앳된 얼굴의 선비가 돌연 왕의 행차를 가로막고 아버지의 원수를 처벌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한다. 사연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열일곱 어린 처녀 박효랑이었다. 그녀가 남장을 감행하고 왕 앞에 나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박효랑의 아버지는 묘지 소송에 휘말려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집안 대대로 모시던 조상의 묘지마저 빼앗긴다. 박효랑의 언니 또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다 석연찮은 죽음을 맞는다.
산송으로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언니를 잃은 박효랑의 한 맺힌 사연은 전국 유림의 여론을 들끓게 했고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세자 영조는 임금 즉위 후 사건의 재조사를 지시한다. 과연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역사스페셜에서는 사건의 전후과정이 담긴 [박효랑실기]를 토대로 박효랑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본다.

- 임금도 막지 못한 ‘묘지 분쟁’
결국 산송은 조선 후기 최대의 사회문제가 된다. 사대부가의 양반들은 남의 선산에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투장(偸葬)’도 서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영조가 직접 나서서 중재를 한 사례도 있다.
청송 심씨와 파평 윤씨 두 집안 간의 산송 싸움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임금도 막지 못해 결국 대를 이어 계속됐고 지난 2008년 비로소 극적으로 해결됐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격화됐던 산송!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지나친 산송 격화, 조선 후기 사회를 망치다
산송은 노비 소송, 전답 소송과 더불어 조선 사회 3대 민사소송으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두 소송에 비해 다루기 까다로웠다.
모호한 법 규정 탓이었다. 판결이 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고 이미 판결이 난 사건이 여러 차례 재소되기도 했다. 산송으로 인한 민원성 소송제기로 관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정약용은 당시 산송 문제를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묘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송이 이제 폐속의 경지에 이르렀다
싸우고 구타하여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절반이 이에서 비롯된다 - 목민심서

신역사스페셜 116회 – 임금도 막을 수 없다. 조선의 묘지소송 (2012.10.4 방송)
http://history.kbs.co.kr/

Видео KBS 역사스페셜 – 임금도 막을 수 없다. 조선의 묘지소송 канала KBS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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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января 2020 г. 13:00:13
00: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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