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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철학티비 제149강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봉준4

강성률 철학 티비 제149강 새야 새야 파랑새야-전봉준(4)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전봉준이 체포되어 끝내 사형을 당하자 백성들이 그를 안타까워하며 불렀다는 노래. 여기에서 ‘파랑새’는 일본군, ‘녹두꽃’은 동학농민군, ‘청포 장수’는 백성을 상징한다고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녹두 장군’은 (앞 영상에서 보듯이) 전봉준의 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황토현 전투와 황룡촌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며 전주성을 점령했던 동학 농민군은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조선 땅에 진주하며 상황이 악화하자 전주 화약을 맺고 일단 철수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경복궁을 무단 침입하여 국왕을 겁박하기에 이르자 전봉준은 서울 진격을 결심하고 병력을 논산에 집결시킵니다.
그런데 논산에서 서울을 가려면 반드시 공주를 거쳐야 하는 바, 그 길목에 해당하는 우금치에서 피할 수 없는 결전을 벌이는데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전투에서 동학 농민군은 처절한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기관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관군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지요. 농민군 지도자 김개남은 즉결 처형되고, 전봉준은 동지였던 김경천의 배신에 의해 체포되고 맙니다. 전봉준은 손화중, 최경선, 성두한, 김덕명 동지와 함께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 의금부에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한편, ‘녹두 장군’은 전봉준이 아니라 김개남 장군이었다는 설이 제기되어 있습니다. 김개남이 총사령관 자리를 전봉준에게 양보하기 전, 이미 그의 별명은 ‘녹두장군’이었다는 거지요. 전봉준이 체제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였다면, 김개남은 완전히 세상을 뒤집어 엎고자 했던 과격파 혁명가였습니다. 그 때문에 전봉준이 교수형을 당한 반면, 김개남은 즉결 처분으로 참수형을 당하여 효수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밖에 본 영상에는 왜 김개남이 “고부 군수 조병갑이를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지, 전봉준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가 다름 아닌 서광범(다산 정약용이 암행어사 때 비리를 고발하여 파직시킨 서용보의 증손자)이었다는 사실도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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