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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땅 한국에서의 아들과의 마지막 인사

호주 퀸즐랜드의 청년 빈센트 힐리는 9남매를 책임지던 장남이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겠다”며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1951년 3월, 전투 중 폭탄 파편을 맞아 스물몇 살의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비보를 들은 그의 어머니 델마 힐리는 아들을 한국 땅에 묻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언젠가 꼭 아들의 묘를 찾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가난한 형편에도 파인애플 공장에서 일하며 10년 동안 뱃삯을 모아,
1961년 마침내 1만5000km를 넘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도착해
아들의 묘 앞에서 눈물의 작별을 전했습니다.

그 감동적인 여정은 한국 언론에 소개되었고,
이 기사를 본 서울의 고 김창근 여사가 그녀에게 연락을 보냈습니다.
김 여사 역시 한국전에서 남편을 잃은 전쟁 미망인이었고,
전쟁이 남긴 상처 속에서 두 여성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국경을 넘어선 펜팔 친구가 되었습니다.

델마가 호주로 돌아간 뒤에도
김창근 여사는 매년 힐리의 기일마다 부산으로 직접 내려가
꽃을 놓고 묘비를 정성스럽게 닦으며
“한국에서의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이 특별한 인연은 두 여성의 생이 끝난 뒤에도 이어져,
김 여사의 손녀와 힐리의 조카 루이스 에반스까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따뜻한 우정과 기억의 연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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