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140주년 기획] “140년의 기록, 100년을 잇다” ③ ‘성결’의 시작과 미래, ‘중앙성결교회’ (장현수)ㅣCTS뉴스
[앵커]
CTS뉴스가 국내 복음 전파 140주년을 맞아 한국 기독교 역사를 재조명하고, 다양한 사료로부터 선교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140년의 기록, 100년을 잇다” 기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 최초의 자생교단인 성결교단과 서울신학대학교를 품어낸, 중앙성결교회를 찾아가 봤습니다. 올해 창립 118주년으로 120주년을 준비하며 더욱 탄탄한 사료 정리 사역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장현수 기자입니다.
[기자]
복음 안에서 거룩하고 깨끗함을 뜻하는 ‘성결’. 일상 용어로는 생소할 수 있어도 거룩하게 살아가는 게 목표인 신앙인에게는 꼭 필요한 가치일 텐데요. 한국교회에 성결의 파도를 일으킨 중앙성결교회를 찾아와 봤습니다.
서울 종로6가 언덕길에 우뚝 선 교회.
그 시작점은 서울 종로구, 종각역 부근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립 110주년을 기념해 교회가 시작한 최초의 전도관 자리에 교단 표시석을 새겨놨기 때문입니다. 일본 동경성서학원에서 찰스 카우만과 어니스트 길보른 선교사로부터 배운 김상준과 정빈이 1907년,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이곳에 세우면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결교단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1933년 성결교회 제1회 창립총회가 열리면서 성결교단은 최초의 한국인 자치교단이 됐습니다. 중앙성결교회의 행보가 한국 기독교의 자생력을 증명한 겁니다.
[한기채 목사 / 중앙성결교회]
성결교단은 외국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진 교단이 아니고 한국 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교단이다 그래서 자생 교단이라고 하는데요 1907년에 (김상준·정빈)여기 서울 종로에 돌아와서 전도운동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예수가 생명이라오 이렇게 해서 자연히 모이게 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게 중앙성결교회고 우리 교단입니다
[기자]
중앙성결교회는 뿌리부터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영상으로 남아있는 경성 노방전도 모습. 전도의 표제는 성결교단의 신학적 신조인 사중복음입니다. 1921년 김상준의 대표 저서 ‘사중교리’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포함하는 사중복음으로 체계화한 겁니다.
중앙성결교회는 교단뿐 아니라 서울신학대학교의 모체입니다. 서울신대가 보유한 화보 자료에는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서울신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남녀공학 제도를 도입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1921년 신축된 경성성서학원의 경우 당시 신학교 단독 건물로는 해방 전까지 가장 큰 건물이기도 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1943년 12월 발표된 ‘성결교 해산 성명서’. 성결교단의 사중복음이 일본국체를 위배한다는 이유로 부정당한 겁니다. 교회 역시 해산됐고, 1948년에 다시 복구됐습니다. 교회의 고난사가 서린 기록이자, 신앙을 지킨 꿋꿋한 증거가 됐습니다.
해방 이후 교회는 이성봉 목사를 중심으로 다시 부흥했고, 6·25 이후에는 재건을 위해 온 교인이 힘을 모았습니다. 교회 사진 자료에서 볼 수 있는 1970-80년대 교회의 성장 동력은 부흥집회였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故 이만신 목사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이 선정한 10대 설교가로 꼽힙니다.
이 목사는 ‘중앙교회 90년사’ 머리말에 이런 대목을 남겼습니다. ‘외형적으로 미약하게 보였지만 우리 믿음이 선조들이 가진 살아 있는 신앙과 성령의 능력을 얻도록 더욱 우리의 영성을 키우고 우리의 영혼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외적 성장이 아닌 신앙의 본질 유지가 교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임을 일깨웁니다.
중앙성결교회는 사진 자료와 당회록 등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 기록물을 디지털화했습니다. 올해 창립 118주년을 맞이하며 창립 12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교회는 오는 9월부터 역사문화위원회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자료 수집에 나서 더욱 탄탄한 역사 자료와 콘텐츠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한기채 목사 / 중앙성결교회]
제 목회 신조는 사람을 세우고 세상을 구하는 교회 그리고 모태에서부터 천국까지 모든 과정을 잘 돌봐드린다고 하는 건데 최근에 120주년을 앞두고 오래되고도 새로운 교회 하겠다 했습니다 오랜 전통을 잘 보존하고 또 학습할 수 있도록 역사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좋은 것을 계승하면서도 부단히 변하는 세대에 대처해 가는 새로운 목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기자]
역사가들은 “중앙성결교회의 역사가 교단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는 만큼, 개교회의 역사가 아닌 더 큰 관점에서 파악할 때 사중복음이나 부흥운동 등 의미 있는 지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후세에 알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명수 명예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제 말 수난이라든지 해방 이후에 중앙성결교회가 어떻게 회복했고 60년대 이후에 어떻게 재구성되고 하는 여러 가지 부분을 보다 큰 틀에서 한국성결교회사 한국교회사 맥락에서 중앙성결교회를 살펴봐야 중앙성결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
중앙성결교회가 지켜온 사중복음은 한국 기독교가 140년을 넘어 더욱 건강한 역사를 써내려 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주춧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CTS뉴스 장현수입니다.
[인터뷰]
한기채 목사 / 중앙성결교회
성결교단은 외국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진 교단이 아니고 한국 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교단이다 그래서 자생 교단이라고 하는데요 1907년에 (김상준·정빈)여기 서울 종로에 돌아와서 전도운동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예수가 생명이라오 이렇게 해서 자연히 모이게 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게 중앙성결교회고 우리 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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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뉴스가 국내 복음 전파 140주년을 맞아 한국 기독교 역사를 재조명하고, 다양한 사료로부터 선교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140년의 기록, 100년을 잇다” 기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 최초의 자생교단인 성결교단과 서울신학대학교를 품어낸, 중앙성결교회를 찾아가 봤습니다. 올해 창립 118주년으로 120주년을 준비하며 더욱 탄탄한 사료 정리 사역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장현수 기자입니다.
[기자]
복음 안에서 거룩하고 깨끗함을 뜻하는 ‘성결’. 일상 용어로는 생소할 수 있어도 거룩하게 살아가는 게 목표인 신앙인에게는 꼭 필요한 가치일 텐데요. 한국교회에 성결의 파도를 일으킨 중앙성결교회를 찾아와 봤습니다.
서울 종로6가 언덕길에 우뚝 선 교회.
그 시작점은 서울 종로구, 종각역 부근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립 110주년을 기념해 교회가 시작한 최초의 전도관 자리에 교단 표시석을 새겨놨기 때문입니다. 일본 동경성서학원에서 찰스 카우만과 어니스트 길보른 선교사로부터 배운 김상준과 정빈이 1907년,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이곳에 세우면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결교단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1933년 성결교회 제1회 창립총회가 열리면서 성결교단은 최초의 한국인 자치교단이 됐습니다. 중앙성결교회의 행보가 한국 기독교의 자생력을 증명한 겁니다.
[한기채 목사 / 중앙성결교회]
성결교단은 외국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진 교단이 아니고 한국 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교단이다 그래서 자생 교단이라고 하는데요 1907년에 (김상준·정빈)여기 서울 종로에 돌아와서 전도운동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예수가 생명이라오 이렇게 해서 자연히 모이게 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게 중앙성결교회고 우리 교단입니다
[기자]
중앙성결교회는 뿌리부터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영상으로 남아있는 경성 노방전도 모습. 전도의 표제는 성결교단의 신학적 신조인 사중복음입니다. 1921년 김상준의 대표 저서 ‘사중교리’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포함하는 사중복음으로 체계화한 겁니다.
중앙성결교회는 교단뿐 아니라 서울신학대학교의 모체입니다. 서울신대가 보유한 화보 자료에는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서울신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남녀공학 제도를 도입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1921년 신축된 경성성서학원의 경우 당시 신학교 단독 건물로는 해방 전까지 가장 큰 건물이기도 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1943년 12월 발표된 ‘성결교 해산 성명서’. 성결교단의 사중복음이 일본국체를 위배한다는 이유로 부정당한 겁니다. 교회 역시 해산됐고, 1948년에 다시 복구됐습니다. 교회의 고난사가 서린 기록이자, 신앙을 지킨 꿋꿋한 증거가 됐습니다.
해방 이후 교회는 이성봉 목사를 중심으로 다시 부흥했고, 6·25 이후에는 재건을 위해 온 교인이 힘을 모았습니다. 교회 사진 자료에서 볼 수 있는 1970-80년대 교회의 성장 동력은 부흥집회였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故 이만신 목사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이 선정한 10대 설교가로 꼽힙니다.
이 목사는 ‘중앙교회 90년사’ 머리말에 이런 대목을 남겼습니다. ‘외형적으로 미약하게 보였지만 우리 믿음이 선조들이 가진 살아 있는 신앙과 성령의 능력을 얻도록 더욱 우리의 영성을 키우고 우리의 영혼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외적 성장이 아닌 신앙의 본질 유지가 교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임을 일깨웁니다.
중앙성결교회는 사진 자료와 당회록 등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 기록물을 디지털화했습니다. 올해 창립 118주년을 맞이하며 창립 12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교회는 오는 9월부터 역사문화위원회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자료 수집에 나서 더욱 탄탄한 역사 자료와 콘텐츠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한기채 목사 / 중앙성결교회]
제 목회 신조는 사람을 세우고 세상을 구하는 교회 그리고 모태에서부터 천국까지 모든 과정을 잘 돌봐드린다고 하는 건데 최근에 120주년을 앞두고 오래되고도 새로운 교회 하겠다 했습니다 오랜 전통을 잘 보존하고 또 학습할 수 있도록 역사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좋은 것을 계승하면서도 부단히 변하는 세대에 대처해 가는 새로운 목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기자]
역사가들은 “중앙성결교회의 역사가 교단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는 만큼, 개교회의 역사가 아닌 더 큰 관점에서 파악할 때 사중복음이나 부흥운동 등 의미 있는 지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후세에 알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명수 명예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제 말 수난이라든지 해방 이후에 중앙성결교회가 어떻게 회복했고 60년대 이후에 어떻게 재구성되고 하는 여러 가지 부분을 보다 큰 틀에서 한국성결교회사 한국교회사 맥락에서 중앙성결교회를 살펴봐야 중앙성결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
중앙성결교회가 지켜온 사중복음은 한국 기독교가 140년을 넘어 더욱 건강한 역사를 써내려 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주춧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CTS뉴스 장현수입니다.
[인터뷰]
한기채 목사 / 중앙성결교회
성결교단은 외국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진 교단이 아니고 한국 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교단이다 그래서 자생 교단이라고 하는데요 1907년에 (김상준·정빈)여기 서울 종로에 돌아와서 전도운동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예수가 생명이라오 이렇게 해서 자연히 모이게 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게 중앙성결교회고 우리 교단입니다
Видео [선교 140주년 기획] “140년의 기록, 100년을 잇다” ③ ‘성결’의 시작과 미래, ‘중앙성결교회’ (장현수)ㅣCTS뉴스 канала CT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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