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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대의 모험, 독일유학1-신용철 명예교수(경희대학교)-철학박사-역사전공-2024.12.12.

생애 최대의 모험, 독일 유학1

▶ 신용철의 동서문화로입니다.
오늘은 제 생애에 가장 큰 모험적 시도인 독일 유학생활을 회고해 봅니다. 나 개인 뿐 아니라 당시 우리 사회와 놀랍도록 격변하던 세계의 상황을 비교해 봅니다

◉ 도 언(導言) Aufgabenstellung

대학을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의 역사 교사로서 이미 30대를 남기면서, 내 삶의 가장 큰 모험을 시도했다. 독일 유학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독일 유학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안의 사정이나 막대한 경비의 문제를 비롯하여 어학능력은 물론 서양에서의 동양학 등 모두 너무나 벅차고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 I.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
1.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절정기로서 공산진영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컸던 반공의 분위기이었다.
2. 독일도 우리와 같이 1945년 2차 세계대전 후, 분열된 세계의 동.서독으로 분단된 국가이었다.
3. 1963년 후 광부와 간호원이 파견되고 1964년 박대통령 이 서독을 방문한 일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졌고, 양국간 교류가 활발해졌다.
4. 한편 “동베를린 공작단 사건으로" 분단국인 우리에게 서독은 매우 위험하다고 여겨진 국가이기도 했다.
5. 한편 우리의 박 정권은 새마을 운동으로 강력한 국가 발전을 추진하고 서독은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라인강의 기적”으로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 불리었다.
6. 유럽은 1955년 유럽경제공동시장(EEC) 경성되어 영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등의 서유럽국가들이 결합하여 군사오맹인 NATO 와 함께 동유럽의 고산진영과 대결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과 중공은 “핑퐁 외교”로 얼어붙은 동서 냉전의 벽을 헐기 시작했다.

◘ II. 네델란드 전세기 KLM으로 독일로 출발
1. 우리 항공기가 없던 시기로 싼 값의 KLM으로 김포 공항에서 홍콩을 거쳐 듀바이와 로마 및 암스털담을 지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고 불편한 노선이었다.
2. 홍콩에서 쉬는 시간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영국령을 바라보다 시내의 고층 건물에 쓰인 “모택동(毛澤東) 주석 만세 ”란 글에 깜짝 놀랐다.
3. 지루한 사흘 만에 1971년 12월 중순에 독일에서 서독의 아름다운 중세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 III. 지성과 낭만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
1. 서독의 서남부에 속하는 지성과 낭만의 하이델베르크시는 높지 않은 하일리겐 산과 철학자의 길 사이의 좁은 협곡을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강 변에 인구 겨우 12만의 아름다운 중세 대학도시이다.
이 협곡의 상류에는 고생인류인 하이델베르크 인의 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2. 이 도시에는 부처진 고중세의 고성 뿐 아니라 로마시대의 옛 다리, 중세의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고 도시, 구 대학건물. 네카강, 철학자의길, 고색 짙은 도서관등 유럽 및 세계적 관광의 도시이기도하다.

3. 1386년에 세워진 640여년의 역사를 갖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 최초의 대학으로 독일 뿐 아니라 유럽 및 세계적인 대학으로 유명하다.
4. 첫 번째의 숙소는 관광객이 끊임없는 역사적인 고성아 래 여학생의 대학기숙사이었다. 이 기숙사에 남학생이 산 최초이라고 모두 신기해했다.
5. 고생 짙은 중세도시의 좁은 길에 전차가 종점으로 대학광장까지는 1 Km 쯤 도니 걷거나 전차를 이용햇다. 몇 년후 전차를 없애고 모두 보행자길로 바꿨다.
6. 그런데 1977년 석사 학위 때 까지는 바로 기숙사 옆 건물이 중국학과이어서 아주 편리했다.

◘ IV. 동서냉전의 완화와 세계정세의 크 변화
1. 한국을 따날때부터 진행된 미중의 수교가 이루어져서 동서 냉전이 완화되면서 서독과 중국이 수교하여 중국 유학생이 오기 시작하고, 중국 문화대혁명의 후기 문물 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2. 이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나는 서양에서 만나게 되어 아직도 철저한 반공의 분위기인 한국에서보다 공산 중국의 문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3. 그리고 당시 서독의 정치도 크게 변하여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와 자민당의 발터 쉘이 연정으로 동방정책을 추진하여 동독과 1972년 기본조약을 체결하여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4. 닉슨이 중국가고 나는 유럽으로 온다고 혼자 속으로 자부했다. 우리 대통령도 1964년 이미 서독을 방문했지 않은가?

◘ V. 전공의 정착: 독일 근세사와 중국 사상사
1. 입학의 전제조건인 종합언어시험 후, 전공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어차피 시작이니 역사와 관계없는 의학과 법학 및 임학도 생각해 보았다.
2. 그런데 미중의 수교로 독 중 관계의 정상화로 중공의 서적들이 중국학과에 쏟아져 들어오고, 독일에서도 중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서점에는 중국의 서적이 넘치고, 거리에는 마오를 외치는 시가행진과 스탈린 그룹과 마오 그룹의 대결도 보였다.
3. 이에 나는 원래의 전공대로 중국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근세사와 중국과 관계된 동남아의 베트남사를 함께 부전공으로 결정했다.
4. 원래의 전공인 중국사를 주저했지만, 당시의 국제정세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그대로 중국을 전공하도록 만들었다.
5. 중국 지성사의 귄터 데본 교수는 동양인처럼 동양적인 인상의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고 치밀한 분이었다. 특히 이 분은 뮌헨대학에서 한국인 교수 이미륵(1899-1960) 에게서 동양철학과 한국학을 악을 배운 분이이기도 하다.

6. 이미륵은 일제 강점기 3.1 운동 시기 시위하다 망명한 분으로 뮌헨대학의 교수로 1946년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st)』를 써서 독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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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철 교수 소개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졸업.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 엮임.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장 엮임.
경기도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 활동 엮임.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주요 저술:
비림비공운동 중 중국에서 이탁오 사상의 정치적 수용(석사 논문)
이탁오의 역사관시론.
초횡의 생애와 사상.
20세기 중국의 유교 논쟁.
서독사회민주당의 동방정책.
이탁오의 사회비평-그의 여성관을 중심으로(독문), 페터랑.
세계의 역사와 문화, 탐구당.
동양의 역사와 문화, 탐구당.
통일시대의 민주시민교육론, 탐구당.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 우석.
마카오 1999년, 우석.
하이델베르크의 추억, 우석.
운허 스님의 큰 발자취, 동국역경원.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 흔든 자유인 이탁오 李卓吾』, 지식산업사.
피어나는 상사화 앞에서, 진실한 사람들.

번역 저술:
중국의 문화혁명(볼프강 프랑케, 탐구당)
중국현대정치사(W.로진스키, 탐구당)
중국인민해방군

Видео 생애 최대의 모험, 독일유학1-신용철 명예교수(경희대학교)-철학박사-역사전공-2024.12.12. канала 신용철 교수의 동서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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