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조선편11) - "4군 6진" 세종, 국경을 열다! #한국의 역사 #조선시대 #4군6진 #세종
역사를 외면하면, 역사는 더 뚜렷한 흔적으로 우리를 되찾는다.
조선 건국 초, 국경은 명과의 갈등, 여진족의 약탈, 북원의 잔존세력 등으로 위태로웠다. 태종은 1410년 모련위 여진을 정벌하며 무력시위를 시작했고, 세종대에는 파저강 유역의 이만주를 상대로 두 차례 정벌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은 국경 방어를 본격화했다.
1430년대부터 1440년대에 걸쳐 세종은 북서쪽 압록강 상류에 여연, 자성, 무창, 우예 4개 군현(4군)을 설치했고, 김종서를 함길도 절제사로 임명해 동북방 회령, 종성, 경원, 온성, 경흥, 부령 등 여섯 도호부(6진)를 개척했다. 이로써 두만강까지 국경선이 북진되며 조선의 영토가 확정되었다.
국경 방어를 위해 행성(방어용 장벽) 축조와 남쪽 백성들의 강제 이주(사민 입거)도 병행되었다. 하지만 사민에 대한 반발이 심했고, 일부 지역은 도망과 저항으로 이어졌다. 이후 몽골계 오이라트의 위협으로 1455년 평안도 4군은 철수되었지만, 6진은 조선 후기까지 국경 방어선이자 무역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세종은 "조상의 강역을 줄일 수 없다"는 의지로 국경을 지켰고, 이는 조선 북방 영토 확장의 기반이 되었다.
Видео 한국의 역사(조선편11) - "4군 6진" 세종, 국경을 열다! #한국의 역사 #조선시대 #4군6진 #세종 канала 인투위드 사.이.언.스
조선 건국 초, 국경은 명과의 갈등, 여진족의 약탈, 북원의 잔존세력 등으로 위태로웠다. 태종은 1410년 모련위 여진을 정벌하며 무력시위를 시작했고, 세종대에는 파저강 유역의 이만주를 상대로 두 차례 정벌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은 국경 방어를 본격화했다.
1430년대부터 1440년대에 걸쳐 세종은 북서쪽 압록강 상류에 여연, 자성, 무창, 우예 4개 군현(4군)을 설치했고, 김종서를 함길도 절제사로 임명해 동북방 회령, 종성, 경원, 온성, 경흥, 부령 등 여섯 도호부(6진)를 개척했다. 이로써 두만강까지 국경선이 북진되며 조선의 영토가 확정되었다.
국경 방어를 위해 행성(방어용 장벽) 축조와 남쪽 백성들의 강제 이주(사민 입거)도 병행되었다. 하지만 사민에 대한 반발이 심했고, 일부 지역은 도망과 저항으로 이어졌다. 이후 몽골계 오이라트의 위협으로 1455년 평안도 4군은 철수되었지만, 6진은 조선 후기까지 국경 방어선이자 무역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세종은 "조상의 강역을 줄일 수 없다"는 의지로 국경을 지켰고, 이는 조선 북방 영토 확장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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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апреля 2025 г. 13:00:24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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