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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명동거리 - 배호 1970

1970년대 음악역사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세시봉', 생음악 무대였던 'OB'S 캐빈'은 명동이 자긍하는 음악의, 젊음의 명소였다. 60세대가 음악을 하려면 가야했던 곳이 명동이었고, 70세대도 '꽃다방'과 같은 음악다방에서 열심히 팝송을 청취했다. 양희은이 대학에 들어가면 꼭 가서 놀리라 다짐했던 곳이 명동이었고 포크의 대부라는 조동진도 명동의 음악 감상실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이제 명동은 고귀와 고급의 명성을 강남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 빼앗겨버렸다. 여전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이 곳을 오는 사람들의 세대와 계층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르다. '밀리오레'의 영향 탓인지 무엇보다 10대들의 발길이 부산해졌다.

'비 내리는 명동 거리/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 말없이 떠난 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했다 이 순간까지/ 나는 너를 믿었다 잊지 못하고/ 사나이 가슴 속에 비만 내린다...'

아마도 요즘의 신세대들은 부모가 들었던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거리'(1970년)가 전달하는 내용물이 왜 그리 진한 지 알 리 없고, 그래서 달라진 감성 때문에 공감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는 확실히 뜨거운 정감의 격발이었지만 감각적인 그들에게는 유치하고 하찮은 과잉의 언어로 폄하될 수 있다.

그래도 명동으로 발길을 대고 부대끼면서 그들도 나중에는 명동정서의 포로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자신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 추억의 흔적들을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언젠가는 사나이 두 뺨을 적시는 흠뻑 적시는 눈물의 이유를 알게 된다. 크라잉 넛의 신보 타이틀곡이 '명동 콜링'이다. 우리 가슴의 뜨거움(日)과 서글픔(月)이 교차해 만들어낸 대중음악 '명(明)품의 거리' 명동의 구속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또 반복된다. - 2004년12월 경향신문

Видео 비내리는 명동거리 - 배호 1970 канала oo7J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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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ноября 2011 г. 15:15:37
0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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