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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개념사/히포크라테스/4체액설/아리스토텔레스/양가성/르네상스/바로크/피치노/아카디아/뒤러/낭만주의/프로이트/애도와 멜랑콜리

어원적으로 멜랑콜리는 검은 담즙이란 뜻이다. 사전적으로 멜랑콜리는 우울하고 슬픈 情調를 말하며, 고대에는 검은 담즙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사람의 기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우울함과 슬픔의 정도가 심해 광기로 번지는 질병이라고도 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네 가지 체액설을 제시했는데, 인간의 몸속에 흐른다고 여겼던 체액을 통해 인간의 기질을 네 가지 부류로 구분했다. “혈액, 노란 담즙, 검은 담즙, 점액”이라는 네 가지 체액이 많고 적음에 따라 서로 다른 네 가지 기질이 결정된다. 그중에서 멜랑콜리커는 검은 담즙이 과도하게 넘쳐흘러서, 어둡고 우울한 성격을 가진 자다. 고대 체액론은 흑담즙에 지배받는 사람을 멜랑콜리커로 판단한 것이고 멜랑콜리를 부정적 질환으로 본 것은 분명하다.
고대 철학자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시학 또는 예술 방면의 비범한 사람들이 왜 모두 멜랑콜리커였을까 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물음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전제가 있었는데 첫째는 인간에게 멜랑콜리라는 기질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대다수의 비범한 인물들이 멜랑콜리커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멜랑콜리라는 증상을 성스러운 질병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멜랑콜리를 긍정적 효능과 부정적 효능이 공존하는 양가성을 인정한 것이다. 히포크라스시대에는 멜랑콜리라는 기질을 의학적으로만 해석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멜랑콜리는 철학적․미학적 문제로 확장되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예술가들은 멜랑콜리 기질을 가지고 있고, 그런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멜랑콜리 기질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한 것이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시대에는 우울증과 광기를 일반적 질병을 넘어서서 일종의 원죄가 표출된 증상으로 취급하였다. 당시 멜랑콜리라는 정조는 acadia로 불렸는데 멜랑콜리에 빠진 자는 생명력이 없고,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신으로부터 분리되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는 것이죠. 다시말하면 멜랑콜리 증상을 심한 무기력과 권태로 인한 영적생활에 대한 나태로 보았다. 루터는 멜랑콜리는 악마의 욕조다라고Melancholia balneum Diaboli 말했듯이 예술가는 멜랑콜리라는 욕조에 몸을 흠뻑 담근 다음에라야 나올 수 있는 자이다. 이를 중세식으로 말하자면 마치 수도사들이 악마의 유혹에 저항하며 싸우듯이 예술가는 악마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자이다.
르네상스시대로 가보면 예술에서의 멜랑콜리는 예술의 필수적인 요인이자 정신 활동의 긍정적 요인으로 인식되었다. 당대 신플라톤주의 학자 마르시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도 두뇌활동이 왕성한 정신노동자가 보이는 증상이고 신이 내린 재능이라는 견해를 지지한 것이다. 이처럼 르네상스시대에는 멜랑콜리를 신성하고 긍정적인 증상으로 생각했다.
천사는 흐트러진 머리카락, 잠을 자지 못해서 충열된 눈, 초점없는 시선으로 침울하게 앞을 응시하고 있다. 무기력함과 나태 즉 아케디아를 형상화한 것 같죠. 그런데 한편으로 그의 치켜뜬 눈은 치열하게 사유함을 보여주고 선명한 눈동자는 타오르는 지적열망을 볼 수 있다. 성취하기엔 거의 불가능에 보이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자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절망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림에서 천사는 각종 기하학을 위한 도구들로 둘러싸여 있다. 사실 뒤러는 평소에도 기하학을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데 적용하려고 했고 그런 시도 과정에서 많은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이 작품의 천사는 뒤러 자신의 예술적 고뇌를 은유한 것으로 볼수도 있다.
그 옆에서는 아기천사 푸토가 판자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이는 깊은 사유에 잠겼지만 어떤 실천에는 이르지 못하는 천사와 행동은 하고 있지만 사색이 부족한 아기천사가 대비된다. 어떤면에서는 예술가가 갖춰야 할 이론적 통찰과 실천능력을 상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의 발밑에서는 한 마리의 개가 자고 있다. 천사는 손에 컴퍼스를 쥐고 있다. 천사는 진리들을 붙잡기 취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에 개는 편안하게 자고 있다. 그러나 이 잠자는 개의 형상은 결코 안온한 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개는 잠도 자지 않고 진리를 찾기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찾고자 했던 진리를 붙잡지 못하자 현실도피를 위해 잠에 빠져든 천사의 페르소나이다. 다시말하면 천사는 잠자는 것을 잃어버린 자이고 개는 천사의 페르소나로서 현실도피적 가상의 잠에 빠진 자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잠을 자는 것까지도 신의 주도하에 있다고 믿었다. 예를들어 잠의 신 히프노스는 밤의 신인 닉스의 자녀이자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형제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잠에서 조차도 불면과 수면이라는 멜랑콜리의 이중적인 두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바로크 사람들도 르네상스시대처럼 멜랑콜리에는 부정과 긍정의 양가성이 내포되어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바로크 멜랑콜리와 르네상스 멜랑콜리는 모종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차이는 이렇다. 르네상스의 멜랑콜리가 깊은 사색을 통해 삶의 어두운 면을 적절하게 의미화하는 작업을 통해 긍정적 귀결을 맺는 방향으로 갔다면, 바로크의 멜랑콜리에서는 그 황량하고 고통스러운 삶 자체를 어떤 의미화 작업도 없이 점점 더 병리적으로 끌고 간 것이다. 이렇게 바로크시대에 멜랑콜리를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슬픔으로 인식한 것은 중세의 원죄로 인한 자기처벌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바로크시대의 멜랑콜리는 마치 자신의 온몸이 깊은사유와 염려의 깊은 강물에 잠식되어 심각한 염세주의적 슬픔, 죽음충동에 이르게 하는 정념으로 변화하였다.
낭만주의로 가보면 낭만주의 사상의 핵심은 무한에의 추구와 동경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에의 추구 이면에는 막연한 정념들, 강렬한 감정의 범람, 상실에 대한 환상과 같은 멜랑콜리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이런 정념이 지배하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적어도 예술가는 신적인 영감을 끄집어낼 수 있는 비범한 천재, 즉 일탈과 과잉을 특성으로 하는 천재론이 다시 등장하게 되고, 바로 멜랑콜리가 비범한 예술가의 전제조건이라는 믿음이 퍼진 시기이다.
증상 측면에서 슬픔은 상실의 대상이 의식적으로 명확하게 인식되는 반면에 멜랑콜리는 무언가를 상실했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그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고 이념일 수도 있다. 특정한 사람인 경우에도 그에게서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를 수 있다. 자기자신을 가혹하리만치 비난하게 되는데 그것도 타인 앞에서조차 아무 부끄러움 없이 마치 남을 비난하듯이 비난하게 된다. 비난의 대상이 자신이듯 보이지만 사실은 떠나가버린 타자, 상실한 타자로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그 상실한 대상은 사랑과 미움이 병존하는 대상, 양가감정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단지 슬픔의 고통만으로 일단락지으려는 사람은 해당 대상에 투여했던 자신의 성적 에너지, 혹은 삶의 에너지인 리비도를 그 대상으로부터 거둬들여서 다른 삶의 대상에 투여하는데 반해서 멜랑콜리커는 리비도를 오히려 원래 상실된 대상으로 밀고 들어간다. 돌려말하면 상실대상을 무덤에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슴에 묻는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내면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영원히 자신과 함께 가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이런 심리상태를 동일화라고 부른다. 상실된 대상과 자신과의 동일화이다. 물론 이 동일화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기자신도 잘 모른다. 이 동일화 과정에서 자아는 분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상실된 대상에 대해 자아가 사랑하는 자아와 증오하는 자아, 두 개의 자아로 분열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상을 사랑하는 동안 무의식의 수면밑으로 가라앉아있던 증오가 의식차원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증오는 사랑의 또 다른 단면에 불과하다. 사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사랑과 증오의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서 살다가 죽는다.
이처럼 멜랑콜리커는 무의식적으로 대상에 대해 투여했던 리비도를 거둬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다. 동일화는 타자를 나로 동일화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반대로 타자에게 압도되어 내가 타자에게 흡수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멜랑콜리는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을 타자의 검은 그림자가 자아에 드리워진 것이라고 지칭하고 또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중의 하나가 나르스시즘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즉 인간은 태생적으로 나르스시스트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쓰지만 나르스시즘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상에 리비도를 집중하려는 집착이 구순기의 리비도로 퇴행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것이 바로 멜랑콜리의 특성중의 하나라고 주장한 것이다. 다시말하면 멜랑콜리커는 자기자신이 직접 사랑하는 대상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자속에 있는 자아, 타자화된 자아를 선택하는 것이다. 멜랑콜리커는 타자를 사랑해서 내면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타자속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나르스시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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